다리 저림은 하지정맥류의 대표 증상 목록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대규모 인구집단 조사에서도, 초음파로 정맥 역류를 직접 확인한 분석에서도 저림은 정맥류와 유의한 연관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맥류가 눈에 보인다는 사실과, 그 다리의 저림이 정맥류에서 왔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양산 호랑이부부한의원 대표원장, 한방재활의학과 전문의 정범환입니다.
진료실에서 이런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다리가 저려서 갔더니 정맥류가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시술하면 저림도 같이 좋아지는 건가요?"
진료지침이 정리한 '정맥성 증상'에 저림은 없습니다
유럽혈관외과학회(ESVS)의 2022년 만성정맥질환 진료지침은 어떤 증상이 정맥질환과 연결되는지를 정리해두었습니다. 무거움, 붓는 느낌, 화끈거림, 가려움, 통증은 정맥질환의 임상등급(CEAP)이 올라갈수록 강해지는 증상으로 분류됩니다.
반면 피로감, 쥐남, 하지불안은 정맥질환에 대한 특이도가 낮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저림'은 이 목록에 아예 등장하지 않습니다.
정맥이 만들어내는 불편감은 대체로 무겁고 붓고 화끈거리는 쪽이지, 저리고 남의 살 같은 쪽이 아닙니다.
1,566명을 조사해서 나온 결과
BMJ에 발표된 에든버러 정맥 연구(Bradbury 등, 1999)는 18~64세 일반인 1,566명에게 다리 증상 설문을 받고 직접 진찰했습니다. 설문 항목에는 저림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결과는 이랬습니다. 남성에서는 가려움만, 여성에서는 무거움·통증·가려움만이 정맥류와 유의하게 연관되었습니다. 저림은 어느 쪽에서도 유의한 항목에 들지 못했습니다. 연구진은 정맥류가 있더라도 다리 증상 대부분은 정맥이 아닌 다른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같은 연구팀이 2000년 Journal of Vascular Surgery에 낸 초음파 분석은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표재정맥 단독 역류는 남성에서 어떤 증상과도 유의한 관련이 없었고, 심부정맥 단독 역류는 양쪽 다리·양쪽 성별 모두에서 어떤 증상과도 연관되지 않았습니다.
눈으로 확인한 정맥류로도, 초음파로 확인한 역류로도 저림은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정맥 쪽을 확인해볼 상황
반대 방향의 보고도 있습니다. 국내 척추센터에서 다리 통증으로 내원한 196명을 초음파로 검사한 연구(Yang 등, Scientific Reports, 2023)에서는 85.7%에서 정맥 역류가 발견되었고, 저림·이상감각이 가장 흔한 증상 유형이었습니다.
다만 이 연구는 정맥류를 의심할 만한 소견이 있는 환자를 선별해 등록했고 비교 대조군이 없어, 일반 인구로 그대로 확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참고할 만한 특징은 있습니다. 종아리에서 발로 내려가는 분포, 1년 이상 이어진 경과, 아침의 무거움과 밤에 심해지는 양상입니다.
이런 조합이라면 정맥 쪽도 함께 살펴볼 이유가 됩니다.
시술을 결정하기 전에 나눠야 할 두 가지 질문
정맥류 자체를 치료할지는 혈관 상태를 보고 판단할 문제입니다. 여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문제는 저림입니다. 저림이 시술의 이유로 제시되었다면, 그 저림이 어디서 오는지를 따로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저림은 요추 신경뿌리 압박, 척추관 협착, 말초신경병증 같은 경로를 통해 훨씬 흔하게 발생합니다.
허리를 굽히면 편해지는지, 걸을 때 심해지고 앉으면 풀리는지, 발가락 감각이 함께 둔한지 — 이런 질문들이 실마리가 됩니다.
정맥류를 치료할 필요가 있는지와, 저림이 정맥류에서 왔는지는 따로 답해야 하는 두 개의 질문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먼저 검사를 받으십시오
한쪽 다리가 갑자기 붓고 아픈 경우
발목이나 발가락에 힘이 빠지는 경우
대소변 조절이 평소와 달라진 경우
감각이 둔해지는 범위가 넓어지는 경우
발목 주변 피부색이 변하거나 상처가 낫지 않는 경우
자주 묻는 질문
Q. 정맥류가 있는데 다리도 저립니다. 관련이 있는 걸까요?
A. 두 가지가 같은 다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는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1,566명을 조사한 에든버러 정맥 연구에서 저림은 정맥류와 유의하게 연관된 증상 목록에 들지 않았습니다. 정맥류도 흔하고 저림도 흔하기 때문에 우연히 같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Q. 시술하면 저림이 없어지나요?
A. 저림의 원인이 정맥에 있을 때만 기대할 수 있는 변화입니다. 에든버러 연구진은 정맥류가 있어도 다리 증상 대부분은 정맥 외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정리했습니다. 시술 전에 저림의 출처를 따로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Q. 초음파에서 역류가 나왔는데도 관련이 없을 수 있나요?
A. 2000년 Journal of Vascular Surgery에 실린 같은 연구팀의 분석에서 심부정맥 단독 역류는 양쪽 성별 모두에서 어떤 증상과도 연관되지 않았습니다. 역류가 있다는 소견과 지금의 저림이 거기서 온다는 판단은 다른 층위의 이야기입니다.
Q. 그럼 저림은 어디서 오는 경우가 많나요?
A. 요추 신경뿌리 압박, 척추관 협착, 말초신경병증이 흔한 경로입니다. 어떤 자세와 상황에서 심해지는지가 감별의 출발점이 됩니다.
Q. 정맥 쪽을 의심해야 할 때는 언제인가요?
A. 종아리에서 발로 내려가는 저림이 1년 이상 이어지고, 아침에 무겁고 밤에 심해지는 양상이라면 정맥 쪽 확인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국내 척추센터 연구에서 관찰된 특징이며, 선별된 환자군이라는 한계는 감안해야 합니다.
보이는 것과 아픈 것은 다릅니다
다리에 정맥이 도드라져 보이면 그것이 원인처럼 느껴집니다. 눈에 보이니까요. 하지만 몸에서 눈에 잘 띄는 것과 지금 증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 늘 같지는 않습니다.
허리 MRI에서 디스크가 보여도 그것이 통증의 범인이 아닌 경우가 많은 것과 같은 구조입니다.
저림이 언제, 어떤 자세에서,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번지는지를 먼저 정리해보십시오. 시술 여부는 그다음에 판단해도 늦지 않습니다.